내가 읽은 시

고무신의 사표/ 이시영

마리소피아 2005. 12. 19. 11:32

 

고무신의 사표

 

 

그 옛날 경주에 사는 고무신이라는 시인이 있었다. 자칭

본업이 문학이고 부업이 중등학교 교사인지라 허구한

날 시 씁네 하고 결근 아니면 지각이었다. 그런데 이 양

반 최선의 방어는 최대의 공격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던지

주머니 속에 항상 사표를 써서 넣고 다니다가 교장이

부르면 가서 제 쪽에서 오히려 바르르 화를 내며 "이거

내면 될 거 아이가!" 하면서 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다고

한다. 그때마다 사표를 앞에 두고 난감해진 교장이

오만상을 찡그리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이

고무신은 흰 창이 많은 눈을 옆으로 치뜨며 "안 받을

모양이제?" 하면서 얼른 그것을 빼뜨려 주머니에 넣으며

잰걸음으로 교장실을 나왔다고 하는데 하도 많이 넣었다

뺐다를 해서 그의 사표는 휴지처럼 너덜너덜했다고 한다.

 

 

 

 

<바다호수> 이시영, 문학동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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